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스라엘 왕국 (문단 편집) === 통일 왕국 === ||<-2> [[파일:Kingdom_of_Israel_1020_map.svg.png|width=100%]] || || ||사울과 다윗 통치 시대 이스라엘 왕국의 강역 || [[사울]]이 처음으로 이스라엘의 국왕 자리에 오르면서 이스라엘 왕국의 역사가 시작되었다. [[기원전 10세기]] 즈음 그 유명한 [[다윗]]과 [[솔로몬]]의 치하에서 '''이스라엘 왕국의 최전성기'''가 이루어졌다고 기록된다. 다윗은 일생에 걸쳐 수십 번의 전쟁을 통해 [[12지파]]로 갈라진 이스라엘 민족을 통일하고 뛰어난 용병술을 자랑하는 군대 장관 [[요압]]을 앞세워 주변국을 병탄하기에 이른다. 이스라엘 주변으로는 [[암몬]], [[모압]], [[에돔]], [[티레]], [[시돈]]과 같은 [[페니키아]] 계열 민족들이 살고 있었는데 이스라엘을 비롯한 이들 모두는 페니키아어([[히브리어]])를 입말로 썼고, 지속해서 영향을 주고받은 민족이기 때문에 다윗과 솔로몬은 이들을 쉽게 합병하여 단시간 내에 영토를 넓힐 수 있었다. 그리하여 북쪽으로는 시리아 남부까지 남쪽으로는 [[요르단 강]] 동편까지 뻗어 나갈 수 있었다. 또한 페니키아의 뛰어난 조선 기술과 운수 기술은 이스라엘을 [[지중해]] 서쪽 [[이베리아 반도]]에 위치한 다르싯(또는 다시스, [[타르테소스]]로 추정)과 심지어 [[홍해]]로 나아가는 에시욘게벨 항을 통해 [[인도 반도]]와도 교역을 할 수 있게끔 도왔는데 그 덕분에 이스라엘은 중동 국가 중 어느 국가보다도 부유한 상업 국가로 발돋움하게 된다. 이 시돈은 오늘날로 치면 [[뉴욕]]급 도시로 이후 아합 왕 시절에 시돈의 공주가 왕비가 되어 이스라엘에 큰 영향력을 끼친다. 하지만 이러한 영광은 솔로몬 치세 말기에 완전히 무너져 내렸는데, 다윗의 무자비한 정복 전쟁의 결과로 [[민족주의]]적 저항 의식이 싹튼 북동쪽의 [[아람]]과 남쪽의 [[에돔]]에서 반란이 일어나 이스라엘의 통치에서 벗어났으며, 동쪽의 [[모압]]과 [[암몬]]에 가해지는 영향력도 예전만 하지 못하게 되었다. 설상가상으로 이스라엘의 무역을 돕던 북쪽의 페니키아계 왕국들마저 독립하게 되어 이스라엘과의 무역 경쟁에 뛰어들게 되었다. 솔로몬 사후, 12지파 중 10지파는 솔로몬의 아들 [[르호보암]]으로부터 등을 돌렸고, [[여로보암 1세|여로보암]]은 이들 10지파를 이끌고 반란을 일으켜 성공, 북이스라엘의 국왕이 되었다. 유다 지파와 소수가 된 벤야민 지파만이 르호보암의 통치 아래에 있었고, 이들을 중심으로 남부에 [[유다 왕국]]이 건국됨으로써 히브리 민족의 국가는 남북으로 분열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